작성자가 진실만 이야기할 것을 약속했으나 상습적인 변심으로 진실이 아닌 문장도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물론 모두 진실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
아이가 태어났다. 장소는 인천직할시 부평구의 어느 산부인과. 이름은 미상. 때는 삼월 구일 이른 아침 여섯시 오십구분. 여자아이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의 소원대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하여 ‘○○’이라 이름 붙였다. 그가 꾸린 가정에서는 두 번째 아이였으며 그의 집안에서는 아홉 번째 아이, 첫 번째 여자아이였다. 앞서 태어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돌림자를 붙이지 않았고 한글로 이름 지었다. 아이는 커서 한자 없는 이름이라 근본이 없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이름처럼 원하는 대로 살면서 유독 주류에 서지 못 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전부였을 뿐. 아이의 태몽은 커다란 물고기였다고 한다. …
둘.
일년 중 예순여덟 번째, 윤년일 경우 예순아홉 번째 날 태어난 이들은 물고기자리다. 진부하지만 재미로 본 물고기자리인의 특성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을 옮기자면 ‘몽상가에 낭만을 즐기며, 싫어도 싫다는 말을 잘 못 하는 소극적인 성격에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 한다’이다. 덧붙이자면 ‘이십일 세기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전적’이라고.
셋.
아이는 그가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 뒤로 지나는 철길을 따라 소란한 열차 소리가, 요란한 바퀴 진동이 전해지던. 쏟아지는 햇살 사이 작은 먼지들이 빙빙 춤을 추던 그곳에서 아이는 한 뼘씩 자랐다. 지구가 태양을 여섯 번 감싸 안는 동안. 넬이 부른 ‘지구가 태양을 네 번’에서 차용했음을 밝힌다. 지구의 공전주기를 빗댄 표현으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 년이다.
넷.
그들을 태운 르망은 어디든 달렸고, 아이는 바람을 탄 민들레 홀씨가 되었다. 카오디오에서는 언제나 강산에와 안치환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우리가 들었던, 우리가 불렀던, 우리가 좋아했던, 우리가 반복했던, 우리가 즐겨찾던, 우리가 흥얼거린, 우리가 함께,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다섯.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 이동의 본능.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언급한 내용임을 밝힌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여행하는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 정의했고 인류는 이동하는 본능으로 생존하는 데 유리하게 진화했다. 추운 계절마다 지방 도시를 누볐다. 지역을 넘어갈 때를 제외하곤 전부 걸어서. 근대건축이라 알려진 것들의 위치에 점을 찍어서.
여섯.
근대건축은 근대 시기에 지은 건물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산물이다. 단, 근대건축물로 규정하는 시대의 기점은 연구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일상 공간으로 사용하는 데다 크게 두드러지는 특징이 없어 그저 낡은 건물이라 여기기 쉬운 탓에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를 느끼지 못 하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근대건축연구실에서는 서울 시내에 산재한 그런 낡은 건물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으나 완성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이미 사라지고 없는 건물이 많았고 조사 당시에도 허물어지는 건물이 많았으며 지금도 곳곳에서 철거되고 있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건물을 설계하는 대신 오랜 흔적에 애착을 가지게 된 배경을 놓고 진작부터 고민한 바, 어느 책에서 가까스로 해답을 찾았다. 건축가의 건축 철학을 형성하는 데 어릴 적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 그의 경우 거창하게 철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우나 어렵지 않게 근대건축을 찾을 수 있던 고향의 풍경에서 필시 영향을 받았다 말해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특히 인천항 부근은 그가 좋아하는 분위기가 짙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돌려 보면서 그가 살아 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느끼곤 했다.
일곱.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시덥잖은 감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지러이 쌓인 지난 이방인들의, 시간의 지층 같은 것들. 제법 오래 머뭄직한 공기 중에는 그곳에 살았던, 살다 간, 살아 온 이들의 숨이 뒤섞여 있음을 살끝으로 느꼈다. 때로 저 깊이 어딘가에 갇혀버린 지난 이방인들의 와글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과연 그를 본 사람이 있을까. 흩어진 이방인을 좇는 형체 없는 유령을.
여덟.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글자는 마치 이 나라에 고하는 작별 인사와도 같았다. 분명 이곳이 아닌 어딘가, 이곳이 아닌 어디에서든 살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살도록 설계된 인생이라고 믿었다. 바다 너머에서는 낯선 이가 낯선 이를 맞이했다. 그들은 이방인을 궁금해했고 그럴 때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한번 연락해 보라며 누군가의 메일 주소를 적어 주는 이도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쪽지는 두 번 다시 꺼내 본 적이 없다. 여행을 가기 몇 해 전 그는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 카우치서핑 문화를 처음 접했다. 여행자에게 거실 소파를 내어주면 숙박비 대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상당히 낭만적인 이야기. 이방인도 카우치서퍼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비록 전 세계 수십 억 개 이야기 가운데 수많은 이방인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그로써는 유일했으며, 그 역시 수십 억 개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주워 담았다. 그리고 또 다시 써내려간 이 나라에 전하는 마지막 인사. 우습지만, 독일어로. “행운을 빌어.”
아홉.
실제로 가장 오래 머문 도시는 프라하다. 관광지부터 관광지가 아닌 곳까지 쏘다닌 덕분에 그곳에서의 생활에 금세 익숙해졌다. 밤 거리를 걸었고 새벽 공기를 마셨다. 푸드코트에서 중국 음식과 싸구려 튀김을, 아시안슈퍼에서 컵라면과 압생트를 사 먹고 사 마셨다. 기차와 버스에 올라 근교를 다녀오고 국경을 넘었다 돌아오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았고 길에서 마주친 우체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올드스퀘어에서 제일 맛있는 브랏부어스트 노점과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오지 않은 가게와 추위를 피해 잠시 몸을 녹일 곳과 환율을 잘 쳐주는 환전소를 알아냈고, 장난감 기차로 서빙하는 맥줏집과 노을에 붉게 타오르는 프라하 성이 보이는 비밀장소를 발견했고, 테스코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와 베이글만 맛이 없는 베이글가게까지 찾아냈다. 크네들리키 혹은 덤플링, 포테이토 덤플링, 브레드 덤플링 혹은 브람보코프라 부르는 빵을 좋아했다. (스비치코바를 주문하면 맛볼 수 있다.) 또, 또 뭐가 있었더라.
열.
K를 처음 만난 건 베를린에서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이해 크리스마스 마켓과 겹쳐 시내는 한껏 들뜬 인파로 가득했다. 숙소에 있기 아까운 밤이었다. 그날 밤 어둠속에서는 축축한 겨울 냄새가 났다. 그 속을 정처없이 걷다 멈춘 곳이 어디였더라. 정확히 브란덴부르크 문 앞이었던가. 사람들 틈에서 반짝이는 너를 본 곳이.
열하나.
한철 왔다가는 철새와도 같은 생활. 전전한 곳이 많아 ‘그곳’들에 관해 모두 작성할 수가 없고 전할 만한 이야기도 없다. 그 사이 그에게서 낯선 냄새를 맡은 지난 이방인들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이따금 그들의 장소에 가면 그 시덥잖은 감각이 되살아났으나 어쩐지 더는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형체 없는 유령이 될 수 없었기에.
열둘.
철새의 마지막 정착지. 빌딩 숲에서 떨어져 한갓진 그곳에서는 작은 새가 지저귀고 멀리서 시작된 뻐꾸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추운 계절이면 기러기 떼가 하늘을 날았다. 그도 그 틈에 끼어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떠났다. 난입한 이방인 때문에 열을 맞춘 대열이 흐트러졌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듯했다. 실제로 기러기 대열이 흐트러지면 기러기 무리가 받는 공기 저항이 거세진다. 다시 말해 비행하는 데 힘이 든다는 뜻이므로 이방인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 혹은 착각이다. 한 마리라도 대열에서 벗어나면 금방 제자리를 찾아 대열을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비행 중에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는데,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힘을 주는 소리라고 한다. 지상에서 들어보면 악을 쓰는 것에 가깝다. 이제야 그들이 얼마나 악착같이 날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열셋.
모두들 그곳을 ‘벌말’이라고 불렀다. 하나둘 도로 옆에 비집고 살다 형성된 마을.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벌말은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모두들 그렇게 불렀고 아무도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충 집의 형체를 한 집들이 잇대 있었고 가족을 이룬 이들이 모여 살았으며 학교, 교회, 슈퍼, 약국, 식당, 놀이터, 텃밭까지 필요한 것만 갖춰 놓았다. 그녀가 살던 곳이 벌말이다. 그는 그녀를 만나 그녀의 가족 틈에 비집고 들어앉았다. 그녀의 부모를 엄마, 아버지라 불렀으며 주말이면 그녀, 그녀의 부모, 그녀의 언니, 그녀의 언니의 그, 그녀의 동생들과 함께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양철대문의 벌말집을 드나들 때면 언제나 비릿한 쇳소리가 들렸다.
열넷.
그녀가 말했지. 이젠 나이도 들고 가난해도 평화가 오나 했다고. 사실 그녀가 두 생명을 키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조금도 나아질 기회는 오지 않았어. 그럼에도 계속 살아야 했지.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살아. 좋다 나쁘다 하면서. 이따금 별일 있다 없다 해. 그렇게만 들었어. 마지막으로 본 게 삼년 전이었을 거야. 그녀는 그 자를 한창 찾아다녔어. 누군지는 말할 수 없어. 그녀의 사정이라서. 행복이라 이름 붙일 만한 기억이라곤 부모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이야. 그들은 이백 평 가까이 되는 논밭 딸린 집에 살았지. 어린 그녀는 학교에 갔다와 집에 아무도 없으면 논에 갔어. 둑방으로 뛰어서. 봄이면 그녀 아버지 혼자 삽으로 논 두둑 메웠고, 수로에는 풀뱀이 에스 자로 헤엄쳐 갔고 부레옥잠도 꽃 피어서 저게 무슨 꽃인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거야. 좋은 기억이라고? 무슨 소리야. 가슴 시린 기억이지. 사연이 참 많았어.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고. 힘이 없으니까. 여하튼 삼년 전 몇 번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어. 그것도 얼마 못 갔지만. 갑자기 이사를 갔거든. 그것도 다른 사람한테 들었어. 최근에 다시 연락이 됐는데 여전히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곤 해. 한번 만나보라고? 글쎄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모르겠어. 그녀가 누구냐고? 누군지는 말할 수 없어. 그녀의 사정이라서.
열다섯.
이제 그들은 돌아가려고 해 자기가 있던 곳에 수정은 못해 각자 짜두었던 인생의 일정표에. 더블디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모든 이야기는 아름답게 시작해 아프게 끝나지. 그래도 걱정하지 말 것. 시간이 흘러 다시 떠올리는 날 그 아픔마저 아름다워 보일 테니.